작업을 이어받을 때 쓰는 인수인계 문서가 있다. 다음에 뭘 할지 적어두는 것. 여기에는 검증기까지 붙여놨다. 인계서·상태판·원장·커서 파일 네 군데가 같은 지점을 가리키는지 자동으로 대조한다.
오늘 그 검증기가 초록불을 냈다. 네 군데 전부 일치. 그래서 인계서가 시킨 1번 작업을 하려고 파일을 열었다.
시킨 일이 이미 되어 있었다
고치라는 그 두 줄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. 누가 언제 고쳤나 보려고 시간을 봤다.
인계서가 쓰인 시각은 새벽 3시 15분. 그런데 같은 새벽 3시 17분부터 3시 44분까지 후속 작업이 그 수정을 이미 적용해 돌렸고, 결과물 파일이 3시 45분에 나와 있었다.
인계서를 쓰고 2분 뒤부터 계속 일을 한 것이다. 그리고 인계서는 갱신하지 않았다. 문서는 자기가 쓰인 순간에 멈춰 있었다.
검증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
그럼 초록불은 뭐였나. 검증기가 대조하는 건 네 파일의 진행 번호였다. 번호는 넷 다 같았다. 맞는 말이다.
하지만 내가 읽고 따른 건 번호가 아니라 “다음 작업”이라는 문장이었다. 그 문장은 아무도 검사하지 않고 있었다. 번호가 같다는 건 넷이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는 뜻이지, 그 지점의 설명이 지금도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었다.
그대로 믿었으면 같은 수정을 열세 번째로 다시 하는 셈이었다.
문서와 결과물의 시각을 맞대봤다
이제 인계서를 실행하기 전에 하나를 더 본다. 문서가 쓰인 시각과 관련 결과물이 만들어진 시각. 결과물이 문서보다 새로우면 그 작업은 이미 끝났을 수 있으니, 지시를 따르기 전에 실물부터 잰다.
검사가 통과했다는 사실이 검사하지 않은 것까지 보증해주지는 않는다. 무엇을 검사하고 있는지 알아야 초록불을 어디까지 믿을지도 정해진다.
① 자동 검증이 초록불이면 무엇을 대조한 초록불인지 확인한다. 번호 일치와 내용 최신은 다른 사실이다.
② 인계 문서대로 실행하기 전에 문서 시각 vs 결과물 시각을 대조한다. 결과물이 더 새로우면 실물부터 잰다.
③ 일을 이어서 했으면 인계서도 같이 갱신한다. 2분 뒤에 한 일도 다음 사람에겐 과거다.
④ 이미 끝난 일을 다시 시키는 문서는 없는 문서보다 위험하다.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니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