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1편. 조립 순서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
엔진이 저절로 조립되는 영상
요즘 만드는 건 3D 조립 영상이다.
풍선 바람으로 돌아가는 3D프린트 장난감 엔진이 있는데,
부품 17개가 하나씩 날아와 착착 조립되는 영상이다.
부품이 제자리에 날아가 앉는 것까지는 만들었다.
문제는 순서였다.
1차: 볼트가 먼저 박혔다
첫 영상을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.
볼트가 먼저 박히고, 그 볼트가 조여야 할 기어가 나중에 온다.
허공에 볼트가 먼저 떠 있는 꼴이다.
사람이 보면 3초 만에 아는 걸 기계는 모른다.
그래서 규칙을 만들어 심었다.
“볼트는 자기가 뚫고 지나가는 부품들이 전부 조립된 다음에만 등장할 것.”
부품끼리 실제로 겹치는지 좌표로 검사해서,
순서가 틀리면 렌더링 자체를 중단시키는 문지기를 세웠다.
2차: 케이스를 씌우고 심장을 넣었다
볼트를 잡으니 다음 문제가 보였다.
엔진 케이스가 먼저 닫히고,
그 안에 들어가야 할 크랭크축이 나중에 등장했다.
닫힌 상자 안으로 부품이 유령처럼 통과해 들어가는 그림.
이번엔 제대로 하겠다고
원작자의 실제 조립 설명서를 찾아서
그 순서 그대로 재현했다.
이게 세 번째 실패였다.
3차: 사람 손 편한 순서 ≠ 눈에 맞는 순서
실제 조립 설명서는 실린더 뭉치를
책상에서 미리 조립해두고 시작한다.
사람 손에는 그게 편하니까.
근데 그걸 영상으로 그대로 옮기면
겉껍데기가 먼저 붙고 속이 나중에 들어가는,
눈으로는 말이 안 되는 순서가 된다.
결론은 단순했다.
조립 영상의 순서는 공장 순서가 아니라
“안에서 밖으로”다.
뼈대, 심장(크랭크), 덮개, 기어, 피스톤, 실린더, 볼트.
새 부품은 반드시 이미 조립된 것 위에 앉아야 하고,
허공에 뜨는 부품이 하나라도 있으면 순서가 틀린 거다.
세 번 갈아엎고 남은 것
이 규칙을 전부 자동 검사로 만들어 심었다.
다음 엔진, 다음 기계 영상은
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다. 아마도.
기계한테 일을 시키면서 배우는 건 결국 이거다.
내가 “당연하다”고 생각하는 것일수록
말로 풀어서 규칙으로 만들어줘야 한다.
당연한 건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.